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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의 어계(語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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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교대학 작성일11-05-28 14:08 조회3,1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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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의 어계(語系)

 부처님은 언제나 제자들에게 무지한 하층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민중어로 가르침을 전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불교가 인도의 여러 지방에 전파되면서 불교 경전이 각 지방의 민중어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불교가 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그 지역에서는 더 이상 일반 민중이 이해할 수 없는 타국어가 되어버려 불교의 가르침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한 부처님의 참뜻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번역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경전은 여러 가지 언어로 쓰여지게 됩니다.
 이것이 경전의 어계라 할 수 있습니다.

 (1) 범어

 범어(梵語) 범어는 고대 인도에 있어서 바라문교의 거룩한 성전어(聖典語)이었으므로 인도의 다양한 언어 중 표준어라고 할만한 것입니다.
 이러한 범어가 불교의 성전어가 된 것은 대월지국의 카니슈카왕 때에 카슈밀에서 개최되었던 제4결집시에 범어를 불교의 성전어로 한다는 결의가 있었기 때문으로, 그 후 불교경전은 범어로써 표기되어 범어 경전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범어경전은 불교의 전파와 더불어 중앙 및 동북 아세아로 전하여져서 중국어, 서장어로 번역되어 소위 북방불교경전의 원서(原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범어경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19세기에 네팔의 승원(僧阮) 고탑(古塔) 속에서 발견된 이후의 일입니다.
 그 뒤로 여러 곳에서 범어경전이 발견되었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아서 삼장을 통하여 약40부정도 밖에 안되었습니다.
 현재까지 발견된 범어경전은 거의가 대승경전이고 소승경전은 극히 적은 편이나, 다른 경전들과 같이 질서정연한 체계는 엿보이지 않으며 그 종류는 다양합니다.
 이러한 범어경전이 산발적으로 네팔 등의 고탑 또는 고사원(古寺院) 에서, 또는 서역지방의 모래 속에서 발견되는데 이것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회교도의 침입으로 법난(法難)을 맞은 인도의 불교도들이 법보(法寶)의 보호처로 히말라야산의 변방을 택하거나, 그렇게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지하에 은닉처를 구하였음을 알려 주는 것으로 법보를 소멸시킬 수 없다는 그들의 호법(護法) 의지를 보여준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범어 경전의 발견은 이후에도 계속 되었는데, 특히 영국의 네팔 주재원이었던 훗지손에 의해 수집된 경전들은 유럽 학계에 소개되어 인도불교 연구에 신기원(新紀元)을 열었으며, 영국의 바우워 대위는 중국 신강성의 차고에서 '공작왕주경(孔雀王呪經)'을 입수하였고, 그 후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일본의 탐색대가 신강과 돈황에서 범어 고사본을 발견하였으며, 1930년에는 아프카니스탄의 바미안(bamian)에서 상당한 분량의 사본 단편을 발견하였고, 1931년 카슈밀의 길기트(gilgit)에서는 다량의 범본 사경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발견된 범어경전은 불교경전의 전체 분량에 비하면 매우 적은 편이기는 하지만 각 시대를 통하여 대, 소승의 경전이 있는 관계로 경전의 원어로서는 범어가 파알리어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존의 범어 경전들은 여러 나라에서 출판되어 영, 불의 학회나, 러시아의 학사원, 또는 인도의 서점이나 일본 등에서 출판되었읍니다.
 그러나 현존하는 범어경전의 종합적인 출판은 아직 어느 나라에서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2) 파알리어
 
 파알리어(巴利語) 고대 인도 남방의 언어는 파알리어로 지방어였지만, 이 지역에 유포된 경전은 자연히 파알리어로 표기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 남단의 세이론(ceylon)에 불교가 전해졌을 때에는 지형적인 관계로 파알리어 경전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 시기는 대략 서력기원을 전후한 때로 현재 스리랑카에는 삼장의 완전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 파알리어 성전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파알리어경전은 버어마, 타일랜드 등에도 원전 그대로 전하여져서 현재 소위 남방불교도는 모두 이 파알리어 원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파알리어 경전은 현존하는 여러 불교경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이며 원초적인 형태와 내용을 정직하게 담고 있어서 원시불교 연구에 있어서는 더 없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파알리어 성전은 경, 율, 논, 삼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장은 교법에 관한 것의 집성으로 장부(長部), 중부(中部), 상응부(相應部), 증지부(增支部), 소부(小部)의 5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5부 중에서 장부, 중부, 상응부 및 증지부의 4부는 내용이 한역의 아함과 비슷하며, 소부는 한역의 아함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부에는 법구경, 경집, 본생경 등 유명한 경전들이 들어 있습니다.
 또한 율장은 경분별(經分別), 건도부(건度部), 부수(付隨) 등의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경분별은 비구, 비구니의 250계와 350계의 각 조문을 주석하고 설명한 것이고, 건도부는 출가승단의 행사작업 등을 해설한 것이며, 부수는 보유적(補遺的)인 것입니다.
 그리고, 논장은 석존 교설의 해설서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법취론(法聚論), 분별론(分別論), 인시설론(人施設論), 논사(論事), 계설론(界說論), 쌍대론(雙對論), 발취론(發趣論) 등의 7론이 유명합니다.
 파알리어성전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에 걸쳐 영국의 '파알리어성전협회'에서 로마자본(字本)으로 완질(完帙)을 간행하여 유럽 학계의 원시불교(原始佛敎) 연구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남전대장경'이란 이름으로 1935년~1941년에 일본어로 번역하여 출판한 바가 있습니다.  

 (3) 중국어

 범어의 원전은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대에 서역지방 즉 중앙아세아의 여러 나라에 전하여졌는데, 이것은 다시 점차로 중국 본토로 전하여져서 한역되게 되었습니다.
 이 경전의 한역은 서기2세기로부터 10세기에 이르는 동안 각 왕조를 통하여 주로 국가적인 뒷바침에 의해 행하여져서 인도에서 성립된 대부분의 경전이 번역되었는바, 이것은 대부분이 현존하여 있습니다.
 이 한역 경전은 그 종류와 분량에 있어서 다른 어떠한 언어의 경전보다도 가장 완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우리나라 또는 일본 등 제국에서 발달된 대승불교의 근본 성전이 되어 있습니다.  

 (4) 서장어

 티벳트에는 티벳 역사상 영주로 추앙되는 손첸 감포왕 때에 불교가 전래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래 티벳에는 민족종교로서 샤마니즘적인 주술을 중시하는 본교가 있었는데, 이 본교와 새로 전래된 불교가 습합하여 소위 라마교라고 하는 티벳의 독특한 불교가 되었던 것입니다.
 7세기 전반 손첸 감포왕이 티벳의 전국토를 장악하였는데, 이것이 중국의 문물이나 풍속 등이 티벳으로 전하여진 계기가 되었고, 중국이나 인도의 불교가 전래하게 된 단서가 되었습니다.
 또한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문성공주가 중국에서 법사들을 모셔와 사원을 건립하도록 하고, 유학생들을 파견하여 왕래가 활발해짐으로써 범어 경전이 티벳으로 전래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톤미 삼보타를 인도로 파견하여 범어를 연구토록 하여 티벳 외의 문자와 문법을 창안하여, 범어경전이 티벳어로 번역되어 됩니다.
 이리하여 티벳어로 번역된 불교 경전은 라마교의 경전으로써 오늘날까지 남아 있게 되는데, 그 이후 티벳에서는 10세기 이후 네 차례의 대장경 간행이 있었고, 중국에서도 명, 청대에 세 차례의 간행이 있었는데 우리는 이것을 서장대장경 또는 번본대장경(番本大藏經)이라고 합니다.
 서장역(西藏譯) 경전은 문화사상적 가치면에선 한역에 뒤떨어지진 면이 좀 있지만, 그 종류와 분량이 한역 다음으로 풍부하고, 한역에 없는 것이 서장대장경에 있어, 또 언어의 성질상 범어를 모방하여 서장어(西藏語)를 만들었기 때문에, 서장어 경전을 범어 경전으로 복번(複飜)할 수 있어서 범어경전이 적은 오늘날에 있어서 서장어 경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큰 것입니다.
 서장대장경은 같은 라마교권인 몽고 등에도 영향을 끼쳐 1310년에는 30여 명의 학자가 동원되어 서장어을 몽고어로 번역 간행한 바가 있고, 또한 1772년부터는 약 20년간에 걸쳐 만주어로도 번역되어 완간된 바도 있습니다.

 (5) 구미어

 서양에서 인도에 관한 학문적 연구가 시작된 것은 18세기부터 입니다.
 그 이유는 서양인(특히 영국인)이 동양(특히 동남아)에 와서 정치, 군사적으로 지배를 하기 시작하면서, 경제상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나 기독교 전파를 위해서 반드시 인도인의 생활을 알고, 그 사상이나 종교를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서는 선교사들 중에 저명한 동양학작가 적지 않게 나타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산스크리트어 사전을 만든 옥스퍼드 대학의 윌리암스와 벨지움의 뿌생, 불전을 지어 유명한 독일의 올렌베르그, 뮌헨서 불교잡지를 낸 파알리어 학자 가이게르, 영국의 동양 연구 개척자인 막스뮬러, 파알리어 불전연구 개척자인 리스 레이비즈 부부, 카아펜터, 빈테르닛트츠, 하이델베르크에 불교학 연구회를 설립한 독일의 발레세르 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현존하는 범어 및 파알리어 경전의 사본은 대부분 영어, 독일어, 불어 등으로 번역되었는데, 그들의 뒤를 이어 서양에서는 서장어 경전도 점차 번역되고 또 한역경전도 계속 번역되고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영국의 파알리어성전협회(pali text society)의 파알리어 성전의 출판과 그의 영역 사업, 그리고 막스 뮬러가 동양 종교의 성전을 처음으로 영역 집대성한 '동방성서' 50권의 출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일본어

 일본불교가 고래로 한역경전을 그대로 사용해왔던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와 다름이 없다.
 그러나 일본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일본어역을 시작하여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이것을 쓰고 있다.
 그들은 번역에 많은 학자가 동원되어, 학술적 연구의 견지에서 범어 원전을 참조하여 한역의 사정을 밝히기도 하고 혹은 파알리어 경전을 직접 일본어로 번역하기도 하여 경전의 번역 외에 경전 연구에 있어서도 상당히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기고 있다.
 일본어로 번역된 경전을 보면, 각 종파에서 자기 종파의 소의경전을 번역한다던가 또는 학자들에 의해 단일 경전들이 번역된 것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으니 전 경전을 완역한 것으로는 국역대장경, 국역일체경, 남전대장경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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