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하루 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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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우스님 작성일11-08-30 05:47 조회4,649회 댓글1건본문
올 여름은 유독 비가 내리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장마이고 비 피해인데도 속절없이 당하고만 있습니다. 자연이 주는 경고를 무시해 버린 결과입니다. 물 없이는 우리는 하루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은혜를 까맣게 잊고 너무도 당연하게 심지어 요즘 같아서는 물이 넘쳐 귀한 것을 넘어 지긋지긋 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우리 몸은 물을 마시지 않으면 하루를 버티기 어렵습니다. 물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라 생명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물은 자신의 몸을 더럽히면서도 다른 더러운 곳을 씻어 줍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본성은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뿐만 아니라 목욕, 빨래, 심지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난 후 물이 나오지 않으면 옴짝 못합니다. 우리에게 식수로도 뿐만 아니라 식물을 통해서 산소를 공급합니다.
깊은 산. 계곡 속에 사람들이 어질러 놓은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물이 아니면 누가 치워줍니까? 전국의 이름난 산이란 산은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천지입니다.
운동 삼아 산에 가끔 가보면 구석구석에 먹은 물병 과자봉지 등을 버리고 가 버린 걸봅니다. 요즘은 히말라야까지도 등산꾼들이 가서 어질러 놓아 버려진 쓰레기가 잔뜩 쌓여있다고 합니다. 인간들이 어질러 놓은 쓰레기를 치우고 생태계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때론 홍수가 필요합니다.
또한 물은 어떠한 형태의 그릇도 마다하거나 가리지 않고 채워줍니다. 항아리든 접시든, 둥근 그릇이든 네모난 그릇이든 개의치 않고 다 채워줍니다. 말하자면 이것이 보살의 마음입니다. 이렇게 물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어떠한 곳이든 가서 역할을 하며 헌신합니다. 또 물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그만큼 겸손합니다.
노자가 "이 세상에 물보다 부드럽고 겸손한 것은 없다. 그렇지만 딱딱한 것, 사나운 것에 떨어질 때는 물보다 더 센 것은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약한 것처럼 보이는 것, 겸손한 자세가 강한 것 센 것을 이깁니다. 또 방울물들이 모여서 댐을 이루고 댐을 이루어 수력발전을 해서 우리가 쓰는 전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 오묘한 도리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시간의 흐름이 흐르는 강물과 같습니다. 전에도 우리는 이와 같이 모여 법회를 보았고 이웃과 더불어 살았고 지금도 모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지금 어디로 갔는가? 또한 그때 그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의 우리는 그때의 우리가 아닙니다. 새로운 우리들입니다. 강물은 항상 흐르고 있지만 언제나 그곳에 있습니다. 항상 그곳에 있기에 어느 때나 같은 물인 것 같지만 순간마다 새로운 물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도 날마다 그날이 그날이고 같은 시간 같지만, 늘 새로운 날입니다. 그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함께하는 이들에게 물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합니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고 결정이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부드럽고 겸손하게 다가가시기 바랍니다. 물 흐르듯 상대의 얼어붙었던 마음이, 딱딱했던 표정이 어느새 포근하게 부드러운 미소로 다가옵니다. 여러 가지로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물이 변화하여 구름이 되고 때론 안개가 되어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막아주듯이, 한겨울에 서리가 되어 목마른 대지를 적셔 풀과 나무와 곡식들을 보살펴주듯이 내 이웃을 향한 배려와 부드러운 겸손의 자세는 우리 자신을 물보살로 되게 합니다. 이런 물보살은 물처럼 우리 사는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됩니다. 물보살을 함부로 대하면 스스로의 복을 감하게 됩니다.
물의 훌륭한 덕은 만물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장경사 신도님들이 한분 한분 물보살이 되면 지금 계신 이 도량이 같은 곳이지만 날마다 새롭고 하루하루가 즐거운 기도도량이 됩니다. 며칠이지나 몇 달, 몇 년이 지나도록 장경사가 최상의 기도도량으로 자리하게 자리할 수 있는 진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 도량을 맑고 향기롭게 채워주고, 더러운 곳이 있으면 다 씻어주는 근본이 여기 계신 우리 불자님들의 덕이며 보살심(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은 가끔 이런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여러 강물이 바다에 이르면 본래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다만 한 가지 맛이 된다." 또 <화엄경>에도 "세속에 있을 때는 저마다 사회적인 지위와 신분, 그 성씨나 이름을 달리했지만, 내 곁에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면 모두가 같은 수행자이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물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면서 더러운 곳이 있으면 다 씻어 줍니다. 우리 불자님들도 일불제자로 모두 부처님법안에서 진리의 형제들입니다. 일찍이 이름도 성도 얼굴도 모르는 우리들이 오늘 이 자리에 만나게 된 것도 부처님 인연으로 모여 있고, 이해타산으로 얽힌 세상에서가 아닌 순수한 부처님의 가르침의 세계에서 만난 법의 형제, 도반들입니다. 생각할수록 고마운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끄럽고 혼란스런 세상에서 각자 인생관이 자리 잡히고, 삶의 지혜와 길을 찾게 된 것도 부처님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보다 인간적인 삶이고 도리인가를 부처님 가르침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이,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의 삶이 가져다 주는 영향력이란 이런 것입니다. 순간순간 살아가면서 물음을 지녀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과연 생을 후회 없이 보내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나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나 남아있는가? 내게 주어진 시간의 잔고, 얼마나 남아있을까 각자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하루가 지나가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서 그 하루가 지나갑니다. 명심하십시오. 물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아껴 써야하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양은 무한한 시간이 아닙니다. 마구잡이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낭비하여서는 안 됩니다. 나 자신만을 위해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불자로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상대에 대한 보살핌이 동시에 따라야 합니다. 자신을 낮추고 배려 깊은 물보살이 되어 유용하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더불어 행복해지는 지혜로운ㆍ자비로운 길임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한번 지나가면 흐르는 강물처럼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며 가족과 이웃과 도반들과의 관계입니다. 왜 지구상의 그 많은 사람들을 놔두고 여기 이 사람들과 한 식구가 되었겠습니까? 다 그만한 까닭이 있음을 늘 생각해야합니다. 그것을 고마워해야 합니다. 또 설령 나쁜 인연으로 금생에 만났다 하더라도 우리가 부처님 제자로 귀의했기 때문에 한 생각 돌이켜서 늘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물처럼 어떠한 형태도 가리지 않고 담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전생에 맺힌 매듭도 풀리고 이것이 정진이고 수행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하루하루 달라져 갑니다. 또 그렇게 하면 사는 일이 편하고 즐겁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눈 물이야기가 우리 불자님들의 귀한 깨달음이 되어 맘속에 자리하길 기원 드립니다. 혼자인 것보다 함께 웃으며 생활하는 삶이 행복한 삶음을 수행의 과제로 삼고 늘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부처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오.
<숫타니파타>의 '더없는 행복'에 실려 있는 몇 구절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존경과 겸손과 만족과 감사와
때로는 가르침을 듣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인내하고 온화하게 말하고 수행자들을 만나고
때로는 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수행을 하고 깨끗하게 행동하고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열반의 경지를 실현하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세상일에 부딪혀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걱정과 티가 없이 편안한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이러한 일을 한다면 어떤 일이 닥쳐도 실패하지 않는다.
어느 곳에서나 행복할 수 있다.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불기2555년 8월 29일
장경사주지 경우
우리 몸은 물을 마시지 않으면 하루를 버티기 어렵습니다. 물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라 생명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물은 자신의 몸을 더럽히면서도 다른 더러운 곳을 씻어 줍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본성은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뿐만 아니라 목욕, 빨래, 심지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난 후 물이 나오지 않으면 옴짝 못합니다. 우리에게 식수로도 뿐만 아니라 식물을 통해서 산소를 공급합니다.
깊은 산. 계곡 속에 사람들이 어질러 놓은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물이 아니면 누가 치워줍니까? 전국의 이름난 산이란 산은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천지입니다.
운동 삼아 산에 가끔 가보면 구석구석에 먹은 물병 과자봉지 등을 버리고 가 버린 걸봅니다. 요즘은 히말라야까지도 등산꾼들이 가서 어질러 놓아 버려진 쓰레기가 잔뜩 쌓여있다고 합니다. 인간들이 어질러 놓은 쓰레기를 치우고 생태계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때론 홍수가 필요합니다.
또한 물은 어떠한 형태의 그릇도 마다하거나 가리지 않고 채워줍니다. 항아리든 접시든, 둥근 그릇이든 네모난 그릇이든 개의치 않고 다 채워줍니다. 말하자면 이것이 보살의 마음입니다. 이렇게 물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어떠한 곳이든 가서 역할을 하며 헌신합니다. 또 물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그만큼 겸손합니다.
노자가 "이 세상에 물보다 부드럽고 겸손한 것은 없다. 그렇지만 딱딱한 것, 사나운 것에 떨어질 때는 물보다 더 센 것은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약한 것처럼 보이는 것, 겸손한 자세가 강한 것 센 것을 이깁니다. 또 방울물들이 모여서 댐을 이루고 댐을 이루어 수력발전을 해서 우리가 쓰는 전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 오묘한 도리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시간의 흐름이 흐르는 강물과 같습니다. 전에도 우리는 이와 같이 모여 법회를 보았고 이웃과 더불어 살았고 지금도 모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지금 어디로 갔는가? 또한 그때 그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의 우리는 그때의 우리가 아닙니다. 새로운 우리들입니다. 강물은 항상 흐르고 있지만 언제나 그곳에 있습니다. 항상 그곳에 있기에 어느 때나 같은 물인 것 같지만 순간마다 새로운 물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도 날마다 그날이 그날이고 같은 시간 같지만, 늘 새로운 날입니다. 그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함께하는 이들에게 물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합니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고 결정이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부드럽고 겸손하게 다가가시기 바랍니다. 물 흐르듯 상대의 얼어붙었던 마음이, 딱딱했던 표정이 어느새 포근하게 부드러운 미소로 다가옵니다. 여러 가지로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물이 변화하여 구름이 되고 때론 안개가 되어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막아주듯이, 한겨울에 서리가 되어 목마른 대지를 적셔 풀과 나무와 곡식들을 보살펴주듯이 내 이웃을 향한 배려와 부드러운 겸손의 자세는 우리 자신을 물보살로 되게 합니다. 이런 물보살은 물처럼 우리 사는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됩니다. 물보살을 함부로 대하면 스스로의 복을 감하게 됩니다.
물의 훌륭한 덕은 만물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장경사 신도님들이 한분 한분 물보살이 되면 지금 계신 이 도량이 같은 곳이지만 날마다 새롭고 하루하루가 즐거운 기도도량이 됩니다. 며칠이지나 몇 달, 몇 년이 지나도록 장경사가 최상의 기도도량으로 자리하게 자리할 수 있는 진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 도량을 맑고 향기롭게 채워주고, 더러운 곳이 있으면 다 씻어주는 근본이 여기 계신 우리 불자님들의 덕이며 보살심(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은 가끔 이런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여러 강물이 바다에 이르면 본래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다만 한 가지 맛이 된다." 또 <화엄경>에도 "세속에 있을 때는 저마다 사회적인 지위와 신분, 그 성씨나 이름을 달리했지만, 내 곁에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면 모두가 같은 수행자이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물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면서 더러운 곳이 있으면 다 씻어 줍니다. 우리 불자님들도 일불제자로 모두 부처님법안에서 진리의 형제들입니다. 일찍이 이름도 성도 얼굴도 모르는 우리들이 오늘 이 자리에 만나게 된 것도 부처님 인연으로 모여 있고, 이해타산으로 얽힌 세상에서가 아닌 순수한 부처님의 가르침의 세계에서 만난 법의 형제, 도반들입니다. 생각할수록 고마운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끄럽고 혼란스런 세상에서 각자 인생관이 자리 잡히고, 삶의 지혜와 길을 찾게 된 것도 부처님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보다 인간적인 삶이고 도리인가를 부처님 가르침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이,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의 삶이 가져다 주는 영향력이란 이런 것입니다. 순간순간 살아가면서 물음을 지녀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과연 생을 후회 없이 보내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나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나 남아있는가? 내게 주어진 시간의 잔고, 얼마나 남아있을까 각자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하루가 지나가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서 그 하루가 지나갑니다. 명심하십시오. 물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아껴 써야하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양은 무한한 시간이 아닙니다. 마구잡이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낭비하여서는 안 됩니다. 나 자신만을 위해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불자로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상대에 대한 보살핌이 동시에 따라야 합니다. 자신을 낮추고 배려 깊은 물보살이 되어 유용하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더불어 행복해지는 지혜로운ㆍ자비로운 길임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한번 지나가면 흐르는 강물처럼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며 가족과 이웃과 도반들과의 관계입니다. 왜 지구상의 그 많은 사람들을 놔두고 여기 이 사람들과 한 식구가 되었겠습니까? 다 그만한 까닭이 있음을 늘 생각해야합니다. 그것을 고마워해야 합니다. 또 설령 나쁜 인연으로 금생에 만났다 하더라도 우리가 부처님 제자로 귀의했기 때문에 한 생각 돌이켜서 늘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물처럼 어떠한 형태도 가리지 않고 담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전생에 맺힌 매듭도 풀리고 이것이 정진이고 수행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하루하루 달라져 갑니다. 또 그렇게 하면 사는 일이 편하고 즐겁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눈 물이야기가 우리 불자님들의 귀한 깨달음이 되어 맘속에 자리하길 기원 드립니다. 혼자인 것보다 함께 웃으며 생활하는 삶이 행복한 삶음을 수행의 과제로 삼고 늘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부처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오.
<숫타니파타>의 '더없는 행복'에 실려 있는 몇 구절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존경과 겸손과 만족과 감사와
때로는 가르침을 듣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인내하고 온화하게 말하고 수행자들을 만나고
때로는 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수행을 하고 깨끗하게 행동하고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열반의 경지를 실현하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세상일에 부딪혀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걱정과 티가 없이 편안한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이러한 일을 한다면 어떤 일이 닥쳐도 실패하지 않는다.
어느 곳에서나 행복할 수 있다.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불기2555년 8월 29일
장경사주지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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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일님의 댓글
도일 작성일심오한 자연의 섭리와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좋은 법문에 감사드리며 알면서 실천을 하지 못함에 송구할 뿐입니다.